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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ommon thread in most queer lives is undoubtedly frustration - frustration towards the inability to self-express, and towards the rigidity of normality. My half of Meanwhile was conceived from a similar kind of frustration, and in this way I think the creative and queer experiences is alike. As an antidote, I hope Meanwhile can become an experimental space for us to create without being shackled by the objects we design.

대부분 퀴어들의 인생의 공통점이 있다면 분명 '불만족'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을 표현하지 못해 생기는 불만족, 그리고 '정상'의 엄격한 범주로 인해 생기는 불만족 말이죠. 저도 비슷한 불만족 때문에 [그동안]의 절반을 구상했고, 그런 의미에서 예술가와 퀴어들의 인생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동안]이 저희 모두가 제약 없이 창작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줄 수 있는 실험적인 공간 및 해독제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The trouble with poetry is that no one likes it any more. From discovery to the first moment pen is put to paper there’s an unspoken shame that goes alongside it - whether it’s over feeling antiquated or pretentious or whatever else, some sort of implicit emotional barrier almost always exists in the background. It’s I think because of this stigma that poetry has been able to become such a positive queer space - there’s a kinship in the sense of self-repression around both instincts. Meanwhile I therefore hope will be a respite for freedom of queer and creative expression to flourish and (for once) be heard.

​요즘 시의 문제점은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입니다. 첫 발견 부터 펜으로 첫 글자를 쓸 때까지 말하지 못할 부끄러움, 고루하다거나 잘난 척 하는 듯한 기분이 들면서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하죠. 저는 이러한 사회적 낙인 때문에 시가 퀴어들을 위한 좋은 공간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둘 다 공통된 자기 탄압을 겪으니까 말이죠. 저는 [그동안]이 퀴어들의 독창적인 자기 표현이 자유롭게 일어날 수 있는 쉼터가 되며, (처음으로) 들릴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